명량
명량
명량
말이 필요없다.
이순신 장군은 위대하다.
읽는 내내 긴장했다.
영화도 좋지만 책으로 읽는것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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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백성을 위해 불가능에 맞선 영웅, 우리가 지금 원하는 지도자!
독도 영토 분쟁, 위안부 관련 문제, 역사 왜곡 등 일본과 대립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오늘 날, 한 총리 후보의 식민지 두둔 발언이 대두되며 진위여부로 시끄러웠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의결로 또 한 번 파란이 일었다. 우리가 지금, 이순신 장군을 만나야 하는 이유다.
조선 정복의 욕망을 품고 진격해 온 330척의 왜적선! 이순신 장군이 그 불가능에 맞선 유일한 이유는 백성이었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다.
하여 장수로서의 의리는 임금이 아닌 백성에게 있고, 나는 백성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모두가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했지만 태풍 앞 촛불과 같았던 12척의 배는 우리 편에 유리했던 회오리를 만나 8시간 만에 적군을 물리쳤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회오리보다 더 큰 천행으로 백성을 꼽는다. 회오리에 갇혀 서서히 침몰해가던 대장선을 구한 것이 바로, 낫과 갈고리를 든 채 어선을 끌고 바다로 나간 백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전투를 지켜보던 백성들은 자신들을 버리지 않고 지켜준 이순신 장군을 위해, 자진해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명량의 승리를 자신이 아닌 백성의 것으로 전한다. 진심에서 우러난 존경과 신뢰가 약탈의 야심 앞에 목숨을 지키고 터전을 지킨 힘이 된 것이다.
소설 [명량]은 이 모든 장면을 세밀하게 그려 이순신 장군과 백성간의 믿음을 뜨겁게 전하고 있다.
의리(義理)와 충(忠). 나라를 지키고 임금을 섬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백성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믿었던 이순신 장군! 백성을 섬기는 마음과 승리에 대한 굳건한 집념은 우리가 지금 바라는 진정한 ‘히어로’의 모습이다.
이순신
출생 1545년 4월 18일 음력 3월 8일
사망 1598년 12월 16일 (53세) 음력 11월 19일
조선 중기의 무인이며 임진왜란 시기 조선 수군을 통솔했던 지휘관. 자는 여해(汝諧)이며, 시호는 충무공(忠武公)이다
출전 | 년도 | 날짜 | 해전 |
1차 출전 | 1592년(선조 24년) | 5월 7일 | 옥포 해전 |
합포 해전 | |||
5월 8일 | 적진포 해전 | ||
2차 출전 | 5월 29일 | 사천 해전 | |
6월 2일 | 당포 해전 | ||
6월 5일 | 제1차 당항포 해전 | ||
6월 7일 | 율포 해전 | ||
3차 출전 | 7월 8일 | 한산도 해전 | |
7월 10일 | 안골포 해전 | ||
4차 출전 | 8월 29일 | 장림포 해전 | |
9월 1일 | 화준구미 해전 | ||
다대포 해전 | |||
서평포 해전 | |||
절영도 해전 | |||
초량목 해전 | |||
부산포 해전 | |||
5차 출전 | 1593년(선조 25년) | 2월 10일 ~ 3월 6일 | 웅포 해전 |
6차 출전 | 5월 2일 | 2차 웅포 해전 | |
7차 출전 | 1594년(선조 26년) | 3월 4일 | 2차 당항포 해전 |
8차 출전 | 9월 29일 | 1차 장문포 해전 | |
10월 1일 | 영등포 해전 | ||
10월 4일 | 2차 장문포 해전 | ||
9차 출전 | 1597년(선조 30년) | 2월 10일 | 2차 부산포 해전 |
10차 출전 | 8월 27일 | 어란포 해전 | |
9월 16일 | 벽파진 해전 | ||
9월 16일 | 명량 해전 | ||
11차 출전 | 1598년(선조 31년) | 7월 19일 | 절이도 해전 |
9월 20일 ~ 10월 7일 | 장도 해전 / 왜교성 전투 | ||
11월 19일 | 노량 해전 |